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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자녀; 고통을 통하여 오는 영혼의 성숙에 대하여 / 자유자재 박중희

자녀와 방학에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세요
"고통을 통하여 오는 영혼의 성숙에 대하여"
by 앤써레터

방학을 맞은 자녀들을 마주하며 얘기를 나누는 시간을 많이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혹, 지금 자녀때문에 힘들어하고 계신다면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유독 비약적인 발전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고통’을 통해서라고 합니다.

고통이야말로 인간의 영혼을 성숙시키는 도약대인 셈입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선물을 주었을 때를 생각해봅시다. 선물을 건네받고, 포장을 뜯은 뒤 이 선물이 나를 위해 준비된 것임을 알아차릴 때, 선물을 준 이에게 감사를 표한 후 선물을 보며 선물을 준 사람의 의도를 파악합니다. 생각해보니 그 선물이 나에게 꼭 필요했던 것을 알게 되면서 다시 한 번 선물을 준 이의 마음 씀에 감사를 표하게 됩니다. 이것이 선물을 받았을 때 우리가 취하는 행동과 마음가짐입니다.





신은 우리 모두에게 딱 맞는 선물을 줍니다. 단지 고통이란 포장지에 감춰져 있을 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물을 받기도 전에 고통이란 포장지에 놀라 이 선물은 내 것이 아니라며 밀어 내곤 합니다. 이런 경우 내 선물이라고 받아들일 때까지 고통은 계속됩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용기를 내어 그 선물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엄마의 입장에서 자녀가 나에게 고통으로 다가온다면, 그 자녀는 내 인생의 선물임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자녀가 우리에게 무언가 가르치러왔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한 끝나지 않는 게임은 계속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족이란 이름으로 서로에게 배움을 주고자 이승에 왔습니다.

서로의 가르침을 통해 우리가 가야할 목적지는 결국 ‘좋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 아이들도 나와 내 친구 모두가 잘 되기를 바라는 엄마, 내 아이 입에 좋은 것을 넣어주면서도 이 세상의 굶주리는 아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마음 아파하는 엄마, 그런 엄마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출처
http://naver.me/5j3HPmL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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