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직한 사교육이란?
‘한국 사교육 연구협의회’에서는 ‘착한 사교육’이 무엇인가? 에 대해서 논의를 하고 있다. 언젠가부터 좋은 것, 옳은 것, 바른 것, 저렴한 것 등이 ‘착한 것’으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착한’의 의미는 ‘자신에게만 좋은 것’, ‘자신에게만 이득’이 되어도 표현이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우리’를 지향해야 하는 교육의 영역에서는 ‘착한’보다 ‘바람직한’ 사교육을 고민해 보기로 하였다.
필자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사교육’은 사교육을 받는 학생들의 아비투스(habitus)형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교육을 의미한다. 아비투스란 부르디외(Pierre Bourdieu)가 주장한 것으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성품이나 기질이 태어날 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성장과정에서 체험하는 가정환경, 교육환경, 사회문화적 배경, 부모의 사회경제적 위치 등에 의해 후천적으로 형성된다는 것이다.
개인의 인지, 지각, 성향을 총체적으로 드러내는 습성 같은 것으로 생활속에서 자연스럽게 튀어나오거나 그것에 따라 행동을 하게 하는 계층적 상식과 표현기제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사교육을 받고 있는 실정을 고려하면 사교육 환경, 사교육강사, 다양한 상호작용이 학생의 성품과 기질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사교육의 현장을 들여다보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단순히 성적을 향상시키려고 사교육을 찾지만 그 결과는 매우 다양하다. 예를 들어서 첫 번째 학생은 성적만 향상되었고, 두 번째 학생은 성적향상은 물론 인성이나 품성까지 좋아졌다. 세 번째 학생은 성적이 하락하였고, 네 번째 학생은 성적하락뿐만 아니라 더욱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는 등 성격과 태도까지 나빠졌다고 가정한다면 ‘바람직한 사교육’의 결과로 기대하고 싶은 그림은 금방 가늠이 된다.
결론적으로 ‘바람직한 사교육’은 단기적으로 단순한 점수 향상을 꾀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아비투스 형성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사교육은 학생들의 ‘인적자본’을 축적하는 ‘교육자본’으로서 기능과 역할을 하여야 하고, 그것이 ‘사회자본’으로 이어지도록 학생들의 총체적발달을 고민하고 전사적으로 노력하여야 한다.
첫째, 인적자본이란 교육을 통해서 배운 지식과 기술이 몸에 배어서 학문적 능력과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학생들이 사교육을 통해서 자신의 잠재력을 계발하고, 학습력을 키우며,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자신의 성장을 추구한다면 사교육은 인적자본 축적에 기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학생들이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서 사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잠재력 계발이나 학습력 향상은 하지 못한 채 단기적으로 점수만 올렸을 뿐 시험이 끝나면서 배운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사교육은 인적자본 축적에 기여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교육적 기능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
즉, 사교육을 받는다고 해서 모두 인적자본을 축적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학계에서는 사교육이 학생의 잠재력이나 학습력을 도외시 한 채 점수 경쟁만 부추기기 때문에 교육적 기능이 의심스럽다는 지적과 비판이 지속되고 있다. 따라서 ‘바람직한 사교육’이란 학생들에게 문제푸는 요령이나 파편화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배움이 몸에 쌓여서 재산이 될 수 있도록 인적자본 축적에 기여하는 사교육이다.
둘째, 교육자본이란 인적자본이 잘 축적되도록 조력하는 교육환경이나 교육과정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학원시설, 강사, 교과서, 교구, 그리고 교육방법 등이 학생의 인적자본을 길러주기 위해 적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간혹 사교육기업들은 간판(∼ 학원, ∼ 교습소)을 달았고, 교실에는 책걸상과 칠판을 구비하는 등 수업을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시설을 갖추었기 때문에 교육자본으로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속되는 수업이 학생들의 인적자본 축적으로 이어지지 않고 소모적이라면 교육자본으로서의 역할을 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예를 들어서 학원과 강사의 수는 많은데 자격이 미달되어서 교육서비스의 수준이 낮거나 학생의 배움력은 뒤로한 채 영리만 목적으로 한다면 사교육은 교육자본과 거리가 멀다. 또한 호화로운 시설과 값비싼 교재로 학생과 학부모를 현혹시키고, 실제 교육내용과 방법은 학생들의 학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이 또한 무늬만 교육자본이다. 이것은 마치 학원에서 공부를 하기 위해 책상을 마련하였지만 공부는 하지 않고 밥을 먹거나 엎드려 잠을 자는데 이용되어 책상이 식탁이나 침대로 전락하고, 학원은 식당과 휴게실의 역할을 하는 것과 유사하다. 즉, 사교육이라고 해서 모두 교육자본으로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바람직한 사교육’이란 학생들의 인적자본을 축적하기 위해서 최적의 교육환경과 최고의 인적구성으로 시스템을 갖추고, 교육자본으로서 그 기능과 역할에 충실한 사교육이다.
셋째, 사회자본이란 인적자본을 계발하고 축적하기 위한 사람에 대한 믿음, 제도 및 사회에 대한 신뢰, 개인의 능력에 대한 기대 등으로 사회심리적인 부분을 의미한다. 사교육을 제공하는 구성원과 사교육을 받는 학생간의 배움과 신뢰를 매개하고 상호 배움을 촉진· 공유함으로써 교육자본의 기능을 보완한다. 그러나 사교육은 사교육의 효용이 사교육을 받은 개인에 머물뿐 사회적 효용이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교육현장을 들여다보면, 학생들이 친구들보다 높은 성적을 얻기 위해서 사교육을 받다보니 친구에 대한 믿음과 협력보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경계와 경쟁을 앞세우고, 평가 및 입시제도가 수시로 바뀌다 보니 어떤 제도도 믿기 어려운 실정이다. 또 선생님들이 제공해주는 정보는 어디까지 믿고 따라야 하며?, 학생들은 과연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면 원하는 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고 얼마나 믿는가? 불안하기만 하다. 그리고 사교육기업(종사자)은 사회로부터 자신의 영리만 추구할뿐 믿을 만한 교육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이상의 내용을 보면 사교육에서 믿음이나 신뢰라는 사회자본이라는 것을 찾아보기 어려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람직한 사교육’은 사회자본의 축적을 위해 노력을 하는 사교육이다.
그 방안으로는 첫째, 학생과 학부모들이 교사를, 대표(원장)을, 회사(학원)을, 직원을 믿을 수 있도록 약속한 바를 지키고, 학생들이 한 약속도 스스로 지키도록 유도하며, 친구들과 더불어 배우는 것을 가치롭게 생각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다. 둘째, 학생들이 제도와 사회를 믿고 꿋꿋하게 학습에 정진하여 자신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다. 셋째, 사교육기업(종사자)이 교육기업으로서 사회적책임(자선적, 법률적, 경제적, 윤리적)을 다 함으로써 믿고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데 앞장서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사회자본이 쌓일수록 교육과 배움이 수월해지고, 상호이해와 가치공유의 수준이 높아진다는 측면에서 학생들의 행복지수를 고민하는 사교육이 ‘바람직한 사교육’이다.
출처: 박명희(2017). 사교육경영의 기초(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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